성모 마리아 상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마리아 기둥은 30년 전쟁이 끝난 직후 도시가 구원받은 데 대한 시민들의 감사의 표시로 세워졌습니다. 1648년, 프라하 사람들은 구시가지를 점령하려던 스웨덴군의 마지막 공격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구시가지 광장에 걸려 있던 성모 마리아 봉헌화 앞에서,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현지 별명 Panna Maria Rynecká가 유래되었습니다(광장을 뜻하는 옛 체코어 rynek에서 나온 말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도시와 황제 페르디난트 3세는 이 사실을 돌에 새겨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장에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기둥을 세우고, 그 받침에 봉헌화를 두어 프라하를 지켜 준 성모 마리아께 감사를 표하기로 했습니다. 1652년, 프라하 대주교이자 붉은 별 십자군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인 하라흐의 아르노슈트 보이테흐 추기경이 황제 앞에서 이를 축성했습니다. 황제는 또한 정기적인 종교 예배를 유지하기 위해 수도 지부의 관리 아래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기둥으로 향하는 행렬은 매주 토요일과 마리아 축일 및 그 전야에 열렸습니다.

맨 위의 무염시태 성모상은 동정 마리아를 전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무염시태 교리(immaculata conceptio)를 가리킵니다. 이 교리가 교의로 선포된 것은 그로부터 약 2세기 뒤의 일입니다. 원죄가 하느님의 어머니에게 옮겨지지 않았다는 믿음은 교회 전통의 일부입니다. 이를 가장 이른 시기에 분명하게 증언한 문헌은 7세기 예루살렘의 성 소프로니우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 외에는 아무도 미리 정화되지 않았습니다.」(Hom. II; PG 87/3, 3248) 성모 공경 자체는 루카 복음서에 성경적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루카 1,48) 마리아는 용을 밟으며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어머니로 묘사됩니다. 머리 둘레의 열두 별은 요한 묵시록의 「해를 입고 발 아래 달을 두고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쓴 여인」(묵시 12:1)을 가리키며, 이는 2세기 이후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용을 밟는 모티프는 시편의 「너는 사자와 독사를 밟고, 젊은 사자와 용을 짓밟으리라」(시편 91:13)와도 연결되며, 그 바탕에는 「나는 너와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라. 그는 네 머리를 치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치리라」(창세 3:15)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용은 악의 상징일 뿐 아니라 영적 맹목의 이미지로도 이해되었고, 이는 전후 유럽 사회의 혼란을 낳은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신앙이 가져오는 가치는 인간 사회를 무너뜨리는 타락의 힘을 이겨 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기둥은 단순한 기념물을 넘어, 영적 질서가 혼돈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공적으로 선언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기둥은 프라하 사람들이 깊은 굴욕과 연결지은 장소에 세워졌습니다. 1632년 3월 작센군이 도시로 진입했을 때, 그들은 보헤미아에서 가장 공경받던 마리아 성화인 팔라디움을 교수대 아래 놓인 의자에 못 박았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모독 행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1647년 스트라호프 수도원장은 이곳에 마리아 기둥을 세울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프라하의 갱신과 정화, 그리고 보호의 표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1648년 스웨덴군에 맞서 도시를 방어한 뒤, 이 구상은 더욱 큰 영적·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마리아 기둥은 사라고사의 기둥 위 성모 전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과도 이어집니다. 이 전승에 따르면 성모는 사도 야고보에게 발현하여, 자신의 지속적인 보호의 표지로 돌기둥을 남겼습니다. 바로크 시대 유럽은 이 전승을 기독교 도시 한가운데에서 드러나는 마리아 현존의 이미지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이 기둥은 성모 마리아가 자신에게 봉헌된 장소를 지켜 준다는 믿음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기둥의 도상학적 메시지에는 베이스 주변의 주각에 배치된 네 천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열쇠를 든 천사가 사슬로 묶인 마귀를 붙들고 있는 모습은 요한계시록의 장면을 묘사합니다. 「…한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에서 내려와 용, 곧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을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고 잠그고 봉인하여, 그 천 년이 차기까지 다시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 뒤에는 잠시 놓여나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0:1-3).
  • 화염검을 든 둘째 천사는 에덴동산을 지키는 그룹을 상징합니다. 「에덴동산 동쪽에 번쩍이는 화염검을 가진 그룹들을 두어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3:24). 사자 머리와 막을 가진 악마는 사도 베드로의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이 이미지에서 악은 이미 에덴의 문에서 멈췄습니다.
  • 셋째 천사가 칼을 뽑아 들고 굴복한 용을 밟고 있는 모습은 대천사 미가엘의 하늘 전투를 가리킵니다. 「하늘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웠고,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여 더 이상 하늘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큰 용, 곧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상을 미혹하는 자가 땅으로 내쫓겼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겼습니다.」 (요한계시록 12:7-9). 동시에 그의 자세는 주님의 천사가 칼을 뽑은 채 좁은 골짜기에서 발람의 길을 막아선 성경 장면(민수기 22:26-31)과 카를교 전투의 그와 비슷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 십자가를 든 천사가 악마를 땅에 쓰러뜨리는 모습은 도시의 방어가 더 넓은 영적 투쟁의 일부로 이해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성경에서 십자가의 능력은 악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의 말씀으로 그를 이겼습니다.」 (요한계시록 12:11)

체코슬로바키아 선포 이후의 열광적 분위기 속에서 군중이 이 기둥을 무너뜨렸을 때, 그 행위는 단지 정치 권력 변동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새 공화국에서 교회가 공적 영역에서 점점 배제되던 시대를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기둥의 파괴는 바로크 기념물 하나를 치운 사건만이 아니라, 조상들의 종교적 유산과 새롭게 부상한 반성직주의 흐름 사이의 긴장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드러낸 문화적 단절의 몸짓이었습니다. 그 흐름의 일부 주도자들은 이후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 운동에 합류했고, 공개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프라하의 성모 공경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때 후스파의 성상 파괴를 견뎌 낸 Panna Maria Rynecká 의 고딕 성화는 기둥이 무너진 뒤에도 보존되었습니다. 그것과 그 조각 장식의 많은 파편들이 오늘날 라피다리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복원하려는 생각은 20세기 내내 살아남았습니다. 2020년에 다시 세워졌을 때, 그것은 단지 바로크 작품의 재건만이 아니라 정치사를 넘어서는 영적 유산과의 재연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어떤 상징들은 잠시 사라진다 해도 다시 돌아올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도시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속하기 때문입니다.